이 영화를 처음 접한건 얼마 전 TV 영화채널에서 였다. 해설자가 너무나 실감하게 설명해주어 꼭 한번 보고싶었던 영화였는데,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가 운좋게 영화 도입부부터 볼 수 있었다.
무시무시한 괴물이 등장하는 영화라는 점을 감안할 때, 시작부분은 의외로 고요하고 침착했다. 인적이 없고 거의 폐허 상태에 이른 상점안에 엄마와 3명의 아이가 보인다. 아이중 첫째인 듯한 누나는 조용히 이곳저곳을 살피며 아직 어린 막내동생을 따라다니느라 정신없고, 다른 아들 한명은 어디가 아픈듯 바닥에 힘없이 앉아 있다. 눈에 띄는 점이 있다면 모두 신발을 신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옷차림과 바깥 날씨를 보면 거의 가을~겨울의 날씨인 것 같은데, 왜 모두 신발을 신고 있지 않는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잠깐 바깥에 나갔던 아빠가 돌아오고, 상점안엔 5명의 가족이 모두 모였는데 아빠는 막내의 손에 들려있는 장난감 비행선을 보고 기겁한다.
여기서 알아둘 영화속 괴물의 특징!
들을 수는 있으나 볼수는 없다. 볼수 없으니 코앞에 괴물이 있더라도 조용히 할 수만 있다면 살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괴물의 귀가 일반 동물의 귀와는 다르게 초초미세한 안테나 구조처럼 생겼다는 것이다. 일단 어디서 소리가 난다 싶으면 그 장소로 엄청 빠른 속도로 뛰어가서 멈춘뒤, 안테나같이 생긴 귀를 펼친다. 그러니 숨쉬는 소리도 크게 내선 안되는 숨막히는 상황속에서 이 가족이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막내아들의 손에서 간신히 비행선을 빼앗은 아빠는 수화로 말한다. 너무 시끄러우니 가지고 갈 수 없다고...숨소리도 크게 내면 안되는 긴장되는 상황에서 '수화'로 대화하는 이 가족의 재치가 대단하다고 생각되었는데, 알고보니 이집 큰딸에게 청각장애가 있었기 때문에 온가족이 자유롭게 수화로 대화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 있었다. 제대로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인 점을 감안하면 이 가족이 수화로 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 유리한 것은 맞는데, 반대로 들을 수 없다는 장애를 가진 큰딸은 누구보다 더 긴장한 생활을 해 가야 할 것 같았다.
상점에서 막내아들의 손에서 비행선을 내려놓은 뒤, 온 가족은 다같이 한줄로 서서 어딘가로 이동한다. 다같이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로 이동하는데, 길에서 유리조각 하나도 밟지 않는 것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였다. 그렇게 조용히 온가족이 숲길로 들어서서 한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서 '왜애앵~'하는 큰 소음이 나기 시작한다. 배우들의 목소리도 아직 제대로 들어보지 못한 시점이라, 소음의 강도가 유달리 크게 느껴졌다. 온가족이 놀라 뒤를 돌아보니 젤 뒤에 서있던 막내아들이 해맑게 웃으며 아까 빼앗았던 비행선을 이리저리 흔들고 있었다(여기서 제일 이해가 안갔던 건...왜 손이 가장 많이 가는 막내아들을 제일 뒤에 세워둬서 이 사단을 만들었을까 였다. 제일 뒤에 큰누나나 엄마가 있었다면 최소한 어린 아이가 무슨 일을 벌이는지 미리 알 수는 있었을 텐데...)
제일 앞장서 가는 아빠는 빛의 속도로 막내 아들에게 뛰어가지만, 이미 어디선가 소리를 듣고 온 괴물오 빛의 속도로 숲을 헤치며 아이에게 접근하는 것을 나무의 움직임으로 볼수 있었다. 제발 아빠가 더 빠르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지켜봤지만, 온 가족의 눈앞에서 괴물은 아이를 채 가버린다. 너무 가슴 아팠던 건... 갑자기 아들을 잃고, 동생을 잃은 이 가족은 마음대로 소리내어 울지도 못한다는 것였다. 그 울음소리에 또다시 괴물이 돌아올 테니까.
시간이 흘러 막내아들이 죽은 시점으로 부터 10개월 정도가 지난 후, 이 가족의 모습이 보여진다. 정말 깜짝 놀랄일은 이런 상황속에서 엄마는 다시 임신을 했다는 것였다. 아기를 낳을때도 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어린 아기는 밤낮 우는것이 일인데, 도대체 이 부부는 무슨 생각으로 또 아기를 가진것인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엄마의 배를 보니 해산일은 거의 다가온 듯 보였고, 아빠는 묵묵히 가장의 일을 하면서도 청각장애가 있는 딸의 귀가 들리게 할 수 있는 장치를 밤낮으로 연구한다. 대화는 오직 수화로만 있으니 부녀간의 사이가 크게 나쁘게 비쳐지지 않았는데, 알고보니 부녀간에는 미묘한 벽이 있었다. 예전에 막내에게 빼앗았던 비행선을 다시 막내손에 들려준 것이 큰누나였고, 그로인해 동생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누나로선 아빠가 자신을 미워한다고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자녀가 죽은것은 큰 슬픔이지만, 그로인해 다른 자녀를 미워하지는 않을 텐데 아빠와 딸은 그 일에 관해 거의 대화를 하지 않으니 서로의 마음을 모른채 벽만 쌓여 가는것 같았다.
일이 벌어지려고 그랬는지, 아빠는 출산이 임박한 엄마와 사춘기 딸만 집에다 두고 아들과 같이 갑자기 길을 떠난다. 야생에서 살아남는법, 괴물의 민감한 귀를 자연속에서 피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주기 위해서. 밤늦게까지 야생체험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부자앞에 집의 모습이 뭔가 바뀌어 있다. 부자가 집에 없는 사이 엄마는 진통이 왔고,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맨발로 '못'을 밟은 엄마가 소리까지 내는 바람에 엄마는 집안에서 오롯이 위험에 빠진 상황이었던 것이다. 딸은 어두운 밤이 무섭지도 않은지 엄마가 어떤 위험에 처해 있는지도 모른채 수풀속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불행중 다행인건 아빠가 그전에 미리 여기저기 기계장치를 잘 설치해 놓은 덕에 엄마는 집에서 '빨간등'을 켜 가족들에게 뭔가 위험이 있음을 미리 알려줄 수 있었던 거였다. 가족들이 없는사이, 집안에서 괴물도 피해야 하고, 소리없이 극한의 고통을 겪으며 아기도 낳아야 하는 엄마는 정말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여기서 정말 그나마 숨통을 트이게 했었던 장면. 아빠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집에서 좀 떨어진 탑에 폭죽을 미리 설치해 놓은 거였다. 아빠는 집안으로 엄마를 구하러 가고, 아들을 시켜 엄마를 위해 폭죽을 터뜨려 달라는 아빠. 다행히 시기 적절하게 아들이 폭죽을 터뜨려 준 덕분에 괴물의 관심을 다른곳으로 돌린사이 부부와 새로 태어난 아기는 무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끝이 아니었다. 아직 바깥에 있던 아들과 딸이 위험에 처해 있었던 것. 정말 이 영화를 보면 아빠의 어깨가 참 무겁다 라는걸 절감한다. 갓태어난 아기와 엄마를 집에두고 다시 바깥으로 아이들을 구하러 간 아빠는 다행히 아이들을 만나게 되지만, 주변에 괴물이 있는것을 느끼고 급히 아이들을 세워두었던 트럭에 대피시킨다. 아빠도 피하려는 찰나, 아빠의 움직임을 느낀 괴물은 가차없이 아빠를 후려치고 그 모습을 지켜본 아들은 '아빠~'하고 크게 소리지른다. 그런 순간에서 소리지르지 않을 아이가 어디 있을까... 그 소리를 들은 괴물은 다시 아이들이 숨어있던 트럭으로 돌진하고 숨은 아이들을 찾기 위해 트럭을 부술듯이 공격한다.
이제 아빠에게 남은 방법은 단 하나였다. 더 큰소리를 내서 아이들에게 가있는 괴물을 다시 아빠쪽으로 오게 만드는 것. 아마 이 세상의 여느 아빠라면 그런 순간에 망설이지 않고 그런 방법을 선택하지 않을까 싶었다. 너무 무섭고 피하고 싶은 순간이지만 내 아이들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그렇게 아빠가 결심을 하고 나서 영화 광고때 많이 나왔던 이 장면이 나온다. 아빠가 마지막으로 수화로 아이들에게 얘기하는 장면... 특히 관계가 소원했던 딸에게 얘기한다. 아빠는 널 사랑하다고... 아주 많이 사랑하고, 미워한적 없다고...
대화로 하지 않고 수화로 해야만 했던 긴장감때문에 아빠의 수화 동작 하나하나가 더 절절하게 와 닿았던 것 같다. 아빠는 아이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끝으로 아~주 크게 소리지른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아빠가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의 죽음은 너무 감동적이면서 가슴아픈 일이었다. 아빠가 괴물에게 죽임을 당하는 사이 무동력으로 트럭을 운전해 집에 도착한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소리없이 아빠의 죽음을 애도한다.
가슴아픈 결말이었지만, 이 영화를 본 시점에 이미 '콰이어트 플레이스2'가 나왔었기 때문에 곧 후속편을 보리라 기대하며 콰이어트플레이스 후기를 마친다.
댓글